[컬럼] 김영명 교수의 세태만상
예수님의 리더십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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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슈 기자 작성일18-08-30 23:07본문
김영명 교수
중앙신학대학원대학교
국가나 정치권이 천주교나 불교의 목소리에는 비중 있게 반응하지만, 기독교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일례로 7월 10일, 한 페미니스트 단체의 인터넷 커뮤니티 『위마드(WOMAD)』 의 게시판에 한 회원이 성당에서 주는 성체를 훼손한 사진과, 천주교를 폄하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가톨릭은 소리 높여 비판하였다. 그러자 중앙 언론을 비롯한 각종 언론이 이 비판에 동의하며 빗나간 페미니스트 회원들의 과격한 행동을 비판하였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기독교의 고함 소리에도 이런 반응이 나올까?
7월 13일부터 22일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주최하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한편, 동성애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정통 보수 기독교의 연합집회가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약 1만 명 이상의 교인들이 모였지만 경찰들은 한 쪽으로 밀어붙이며 노골적으로 집회를 방해하였다. 서울시 관계자들도 퀴어축제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언론들도 퀴어축제 반대집회에 대한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뤄주지 않았다. 홀대를 넘어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왜 기독교가 이처럼 이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윤리성의 상실과 리더십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이미지는 이미 땅바닥에 추락하였다. 기독교인들이 집회를 했다하면 왜 과격적이며, 집단 이기적인가? 질서를 지키고 선한 모습 긍휼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가? 교회 지도자들조차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과 명예와 권세와 쾌락을 목말라 하고 있으니 어떻게 국가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 기독교 안에는 분쟁과 갈등이 없는 곳이 있다면 이상할 정도로 다툼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체나 인물이 부재한 상태이다. 주요 단체나 교단들은 회장이나 감독 선출을 놓고 끊임없이 싸우는 가운데 사회 법정에서 고소 전을 이어가고 있다.
천주교 하면 추기경이 있어 천주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불교하면 종정이나 총무원장이 있어 불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어떠한가? 이전에는 보수 기독교를 대변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진보 기독교를 대변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한기총에서 한기연이 떨어져 나오더니 분열된 한기총과 한기연을 연합시키겠다고 한교총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는 네개의 단체들이 각자 자신들에게 대표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나 정치권은 어떤 단체를 교섭창구로 인정한단 말인가? 이것이 한국 기독교 리더십의 현주소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교회가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고,
어둔 세상에 진리와 소망의 빛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부패의 온상이 되고,
교회가 진리도 없고 소망도 없는 어둠의 처소가 되었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와 변화가 있어야 한다.
특별히 잃어버린 기독교 리더십을 실천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먼저 영성 사회성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에스라와 바울의 리더십을 배워야 하고
일반 성도들은 다니엘과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더 나아가 리더십의 이상적 모델인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신다.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주님은 죄악에 빠진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사 사랑하셨기에 그 십자가 지길 원하셨던 것이다. 십자가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떤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는가? 주님의 교회, 나의 가정, 나의 이웃을 위해 나는 어떤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길을 성공과 출세의 길로 오해하고 착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도상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 지위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참된 지도자상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2-45)
사실 인간에게는 남을 지배하며 섬김을 받으려는 욕망이 있다. 인간이 일생 동안 싸우는 생존 경쟁의 최후의 목표는 이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사회 등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자리다툼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과 섬김과 희생을 통해 이끌어가는 참된 지도자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런 지도자가 되라고 권면하셨다.
우리는 지배자와 지도자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지배자는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 죽이고,
싸워 이김으로써 자리를 얻으며, 조직을 다스리기 위하여 군림하는 자이다.
그리고 지배자의 권위는 외적인 지위와 권세에서 나온다. 그러나 성경적 지도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함으로 자리를 얻으며, 조직을 다스리기 위하여 섬기는 자이다.
지도자의 권위는 인격적 감화로 이루어지는 내적인 영향력에서 나온다.
지배자는 명령으로 복종을 강요하나 지도자은 감화로 순종하게 한다. 예수님은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주셨으며, 제자들은 예수님의 본을 받아 훌륭한 지도자들이 될 수 있었다.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따를 때 예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였다. 윗자리에 앉기를 원했고, 권세와 영화를 누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정신이 스승 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이제 한국교회는 바른 기독교 영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성령님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성품과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구체적인 삶에서 실현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최고의 리더십 모델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늘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속에서 사셨고,
온유와 겸손,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사셨다.
동시에 말씀으로 바람과 풍랑을 잔잔케 하셨고, 각색 병자를 낫게 하시고 악하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시며 능력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리고 죄인들을 대신해 죽음으로 생을 마치는 최고의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사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통전적이고 균형 잡힌 완전한 영성을 깊이 이해하고 이 영성을 품고 살아야 한다. 이 영성을 가진 성도들이 점점 많아질 때, 거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참된 기독교 리더십인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과 희생의 정신을 본 받아 각자가 처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며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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